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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인간은 타인의 전체를 볼 수 없다.

더 잘 이해하려면 오히려 조각으로 나눠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보며 "그는 똑똑해", "그녀는 예뻐"라고 말한다.

인간의 사고와 언어는 파편 위에 있다.

 

한 인간의 전체를 본다는 것이 가능한가?

누군가가 자신은 타인의 전체를 본다고 해도 사실은 어떤 한 면만 보고 한 말일 수 있다.

누군가의 전체를 본다는 말은 그 사람의 부분적 착각이고 환상일 수 있다.

 

또 누군가는 사람을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런 위선이 또 있을까?

타인을 보는 시선은 종종, 자신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병원, 군대, 학교, 정부는 사람을 역할로 나눠야 돌아간다.

모두를 전체로 대하는 사회는 느리고 복잡해져 무너질 수 있다.

 

AI는 인간보다 인간을 더 정밀하게 파편화한다. 감정 없이 기능만 추출한다.

인간은 자신이 누군가를 기능과 역할로 분류할 때 죄책감을 느끼지만, AI가 그렇게 하면 효율이라 여긴다.

 

이것은 존엄을 지키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실은 자기모순이다.

전체를 보려는 시도는 불가능하고, 그런 시도는 시작부터 성립되지 않는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본다.

그렇게 할 때, 판단은 더 빨라지고, 결과는 예측하기 쉬워진다. 기업과 행정도 이런 방식으로 움직인다.

면접관이 가능성보다 경력을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성은 그 대표적 사례다. 사회는 여성을 기능으로 봐 왔다.

어머니, 아내, 연인, 뮤즈, 성녀와 창녀. 여성성은 부드러움, 공감, 양육 같은 역할로 묶였다.

이는 생물학이 아니라 사회가 만든 분류다. "여성을 전체로 봐야 한다"는 말조차 남성의 자기 도취일 수 있다.

말만 그렇게 할 뿐 여성을 기능적으로 대한다.

 

결론: 전체로 본다는 말은 선의처럼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비현실적 환상이다.

우리가 타인을 인식하는 방식은 결국 몇 가지 조각의 조합일 수밖에 없다.

인간 전체를 본다는 말은 우주 전체를 보겠다는 말과 같다. 도구로 보는 건 죄악이 아니라 현실이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최선은 사람의 각 조각을 최대한 많이 수집하고 맥락과 깊이도 함께 살피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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