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기본소득 논쟁은 늘 "재원(돈)"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중요한 질문이지만, 그보다 먼저 봐야 할 게 있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무엇을 거부할 수 있냐"가 그것이다.
많은 부당함은
"그만두지 못함" 때문에 지속된다.
기본소득은 그 약점을 약화시키는 장치다.
이 글을 통해 크게 세 가지 사회를 볼 것이다.
1부ㅡ일반 직장, 2부ㅡ연구실, 3부ㅡ창작 현장
이 글에서는 3부, 창작현장에서의 모습을 살펴본다.
"거부하면 굶는다"는 공포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3부: 창작 현장 - 시장 검열에서 벗어나기
1. 창작 노동의 구조적 문제: 생존 압박이 만드는 획일화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현재 구조에서 시간은 곧 돈이고, 돈이 없으면 창작은 짧은 호흡으로 쪼개진다.
웹소설 작가 평균 수입 월 147만원, 신인은 50만원 이하.
웹툰 작가 중간값 180만원, 주당 68시간 노동.
문학 단행본 2,000부 팔아 인세 300만원, 집필 기간 1년.
카카오페이지는 회귀물, 헌터물만 기회를 준다.
유료 전환율이 높기 때문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8~12분, 주 3회 업로드를 선호한다.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노출이 사라진다.
조선시대 로맨스가 뜨면 모두 조선시대 로맨스를, 좀비가 뜨면 모두 좀비를 쓴다.
출판사는 "잘 팔린 책과 비슷한 책"만 원한다.
이건 창작자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생존 압박이 만든 시장 검열이다.
2. 기본소득이 바꾸는 것: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
2-1 실험할 시간이 생긴다
당장 팔릴지 불확실한 주제, 긴 호흡의 기획, 실험적 형식으로도 버틸 수 있다.
"이달 원고료가 안 들어오면 집세를 못 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는 순간
창작자는 3개월, 6개월, 1년짜리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다.
2-2 플랫폼 요구를 거부할 수 있다
독점 계약, 저작권 전면 양도, 무리한 마감 등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조건들을 거부할 수 있다.
2-3 "팔리는 것" 강박에서 벗어나면 달라지는 것들
① 새로운 장르와 문법이 나온다.
카프카의 『변신』, 조이스의 『율리시스』,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이런 작품들은 당시 시장이 원하던 게 아니었다.
출판사는 거절했고, 독자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지금은 20세기 문학의 정전이다.
② 사회적 금기를 건드린다.
시장은 안전한 주제를 선호한다.광고주가 싫어하는 주제,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 불편한 진실은 피하게 된다.
정작, 문화의 역할은 금기를 건드리고,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계급 갈등을 정면으로 다뤘다.
이게 투자를 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시장에만 맡기면 "잘 팔리는 것"만 살아남는다.
결과는 천편일률이다. 지금 서점에 가보면 표지부터 제목까지 다 비슷하다.
웹소설 플랫폼은 회귀물 천지다. 이게 독자가 원해서가 아니다.
플랫폼이 그것만 밀어주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이 있으면 창작자는 "팔리지 않아도"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그 중 일부는 시장에서 실패한다. 하지만 일부는 10년 뒤 재평가된다.
④ 문화적 혁신이 일어난다.
인상파 화가들이 처음 전시했을 때 비평가들은 "미완성 낙서"라고 조롱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사중주는 당대에 "연주 불가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혁신은 언제나 시장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나온다.
기본소득은 창작자에게 "시장이 원하지 않아도" 실험할 시간을 준다.
◈ 실증 사례
핀란드 아티스트 베이직 인컴(2017)
2,000명의 예술가에게 월 1,700유로 지급.
결과: 예술 활동 지속률 28% 증가, 새로운 장르 시도 비율 37% 증가.
대공황기 연방정부가 예술가들에게 급여를 주고 공공 미술을 맡겼다.
참여 예술가 중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 거장들이 나왔다.
정부 지원 없었으면 이들은 생계 때문에 상업 미술로 갔을 것이다.
만 19~29세 예술인 100명에게 분기별 50만원 지급.
참여자 82%가 "창작 지속 의지 강화", 74%가 "실험적 시도 증가" 응답.
3. 한국 특수성: K-컨텐츠의 역설
BTS, 봉준호, 황동혁. 그런데 정작 그들을 만든 창작 생태계는 붕괴 직전이다.
황동혁은 『오징어 게임』 시나리오를 10년간 거절당했다.
그 10년을 버틴 건 재능이 아니라 경제적 여력이었다.
K-컨텐츠의 성공은 소수 창작자의 헌신과 다수 창작자의 희생 위에 세워진 피라미드의 꼭지점이다.
실패하고, 실험하고, 오래 활동하는 중간층이 두터워야 한다.
지금 한국은 피라미드 꼭대기만 키우고 밑바닥은 방치하는 구조다. 이건 지속 불가능하다.
4. 창작은 산업과 사회의 기반
2022년 한국 콘텐츠 산업 매출은 160조원.
이 산업의 원료는 창작자의 아이디어다. 원료 공급이 마르면 산업도 마른다.
전주 한옥마을은 영화제와 문학관이 만든 관광지다.
부천 만화 산업, 부산 영화제. 지역 경제는 창작자들이 만든 문화 자산에 기댄다.
문화예술교육은 창작자가 직접 가르친다.
2023년 예술강사 10명 중 7명이 "수입 불안정으로 그만두고 싶다"고 답했다.
창작자가 떠나면 교육도 무너진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서예 수업에서 폰트 디자인 아이디어를 얻었다.
창작과 혁신은 분리되지 않는다.
5. 반론: 고통 속에서 위대한 예술이 나온다?
실제 역사는 정반대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후원받은 전문 예술가"였다.
인상파 화가들도 대부분 중산층 출신이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작품 활동을 했을 것이다.
가난과 병이 작품을 만들기는 커녕, 작품을 막았다.
나가며
거부권이 만드는 사회
직장 갑질, "쓸모" 압박, 시장 검열
이 셋은 다른 현장에서 일어나지만, 구조는 같다.
"거부하면 굶는다"는 공포가 지배한다.
기본소득은 이 공포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다만 약화시킨다.
노동자는 "조건이 너무 나쁘면 떠날 수 있다"는 선택지를 얻고
연구자는 "실패해도, 쓸모없어 보여도" 질문을 던질 수 있고
창작자는 "팔리지 않아도 쓸 수 있다"는 시간을 얻는다.
거부권은 소극적 권리처럼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권리다.
부당함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 협박은 끝나고 협상이 시작된다.
법은 이미 많다. 근로기준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성희롱 처벌 규정.
문제는 법을 실행할 개인의 힘이다.
기본소득은 그 힘을 만드는 경제적 토대다.
1980년대 민주화가 정치 권력을 재분배했다면
기본소득은 경제 권력을 재분배한다.
시장 검열은 국가 검열보다 더 교묘하다.
법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그냥 "팔리지 않는다", "쓸모없다", "돈 안 된다"는 이유로 지워버린다.
대중은 검열당한다는 자각도 없이, 스스로 안전한 선택만 한다.
재원 논쟁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 전에 물어야 한다.
우리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가?
천편일률적인 콘텐츠만 소비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다양하고, 실험적이고, 때로는 불편하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는 사회를 원하는가?
답이 후자라면, 기본소득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거부권은 사치가 아니다. 생존이다.
끝.
<참고 자료: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보고서(2019), 2023 대학 입시 결과 분석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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