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얘들은 완구점 바닥에 드러누운 아이와 같다.
무작정, 페미가 싫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페미는 진보고, 진보의 반대는 극우다.
그래서 이들은 극우가 되기로 한다.
극우가 옳은지, 뭘 해줬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극우가 이들에게 실제로 해준 것도 없다.
이들이 깽판을 치면 그 애미 애비가 들어줬던 거 같다.
그 습성 그대로 사회에 드러눕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남자로 보이는 건 애저녁에 포기한 듯하다.
사회는 그 20대 남자들을 문제 요소나 짐짝으로 취급할 것이다.
원흉은 그 부모다.
불만은 실재했다
20대 남성의 분노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실제로 일자리는 여성에게 더 열려 있다.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나, 여성의 생애 주기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알바 자리 하나 구하는 것도 20대 남성이 여성보다 어렵다.
병역 2년의 기회비용은 실재하고, 취업 경쟁은 극심하다.
여권 신장과 미투 운동 이후 여성에게 말 한마디 잘못 걸면 형사처벌을 받는 구조가 됐다.
길에서 여성을 마주치면 피해가고 눈을 마주치지 않게 된다. 필자 역시 그렇다.
페미니즘 담론이 급속 확산된 2015년 이후 형성된 반페미 정서는 단순한 혐오가 아니라 구조적 불안의 표현이기도 했다.
진보 진영이 이 계층을 "기득권 남성"으로 묶어 장기간 무시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이들이 선택한 그 불만의 해결방안이 극우다.
논리적 연결이 없다. 병역 불평등이 싫으면 병역 제도 개혁을 요구해야 하고, 취업난이 문제면 노동시장 구조를 바꿔야 한다.
극우가 실제로 해준 것이 있는지 따져보면 답은 명확하다.
- 이명박 시기(2008~2013):
청년 취업난이 본격화됐다. 4대강에 예산을 쏟아부었고 청년 정책은 없었다. 등록금 문제가 폭발한 것도 이 시기다.
청년 취업난이 본격화됐다. 4대강에 예산을 쏟아부었고 청년 정책은 없었다. 등록금 문제가 폭발한 것도 이 시기다.
- 박근혜 시기(2013~2017):
청년희망펀드,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이름만 있는 정책들이 나왔다. 실효성은 낮았고 최순실 게이트로 마무리됐다.
청년희망펀드,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이름만 있는 정책들이 나왔다. 실효성은 낮았고 최순실 게이트로 마무리됐다.
- 윤석열 시기(2022~2025):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청년 주거, 취업 실질 개선도 없었다. 불법 계엄, 내란으로 끝났다.
여가부 폐지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청년 주거, 취업 실질 개선도 없었다. 불법 계엄, 내란으로 끝났다.
오직 하나, 페미니즘이 싫다는 감정이 판단 전체를 단정했다.
그래서 이게 투정이고 땡깡인 것이다. 이익도 없고 논리도 없고 감정만 있다.
그래서 이게 투정이고 땡깡인 것이다. 이익도 없고 논리도 없고 감정만 있다.
자학적인 이유
투정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그 투정을 해결해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세력에게 감정을 팔았고, 실제로 돌아온 건 없다.
그 투정을 해결해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세력에게 감정을 팔았고, 실제로 돌아온 건 없다.
미국 백인 노동자가 트럼프를 찍는 구조와 동일하다.
감정은 건드리고, 이익은 챙겨주지 않는다.
감정은 건드리고, 이익은 챙겨주지 않는다.
이용당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서 더 깊이 들어가는 패턴이 반복된다.
카지노와 같다. 판돈은 계속 잃는다.
카지노와 같다. 판돈은 계속 잃는다.
역효과: 페미에게는 꽃놀이패다
더 아이러니한 게 있다.
반페미 감정으로 극우를 선택한 결과, 페미니즘에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했다.
반페미 감정으로 극우를 선택한 결과, 페미니즘에 오히려 정당성을 부여했다.
"20대 남성이 저렇게 반응하는 걸 보라"는 증거가 됐다.
혐오 언어가 넘쳐나는 커뮤니티, 감정적 집단 투표, 이성 없는 분노
— 이 모든 것이 페미니즘 진영에 "우리가 맞다"는 근거로 소비됐다.
— 이 모든 것이 페미니즘 진영에 "우리가 맞다"는 근거로 소비됐다.
싸우겠다고 나선 방식이 상대방의 논거를 강화시킨 것이다.
똑똑하게 싸웠어야 했다.
논리로, 데이터로, 제도 개혁 요구로. 그랬다면 적어도 명분은 가져갔을 것이다.
논리로, 데이터로, 제도 개혁 요구로. 그랬다면 적어도 명분은 가져갔을 것이다.
땡깡으로 싸우면 진다.
실제로 졌다. 페미는 자멸하는 20대 남성을 가만히 앉아 구경하며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실제로 졌다. 페미는 자멸하는 20대 남성을 가만히 앉아 구경하며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다.
원흉은 부모다
깽판을 치면 들어줬다. 칭얼대면 사줬다. 드러누우면 달랬다. 그렇게 키웠다.
그 부모가 누구인가. 586세대다.
민주화를 외치며 진보를 표방했지만 정작 자식 교육은 응석받이로 키웠다.
말로는 민주주의, 집에서는 금쪽이 양산이다.
그 모순이 자식 세대에 그대로 전달됐다.
사회는 부모가 아니다. 직장도, 국가도, 여성도 그 애비 애미가 아니다.
그런데 그 습성 그대로 사회에 드러눕는다.
부모가 만든 인간이 사회에 방류된 것이다.
20대 남성 극우화의 뿌리는 광장이나 유튜브가 아니라 그 집 안방이다.
결론: 투정은 사회가 받아주지 않는다
20대면 투정 부릴 나이가 아니다.
부모 품에서 나와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나이다.
감정이 실재한다고 해서 감정대로 움직여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불만이 있으면 그 불만의 원인을 정확히 짚고, 실제로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골라야 한다.
그게 어른의 정치다.
극우를 찍은 결과는 이미 나왔다. 달라진 게 없다.
사회는 투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시장도, 제도도, 현실도 감정에 반응하지 않는다.
좀 똑똑해져야 한다. 충분히 고민하고, 자기 주장에 책임지고, 감정이 아니라 이익과 논리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이 20대 남성이 실제로 자기 몫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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