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불행한 선진국이다.
그 원인을 파헤치니 학벌이 나온다.
의료 접근성 세계 최상위, 인터넷 속도 세계 1위, 대중교통 세계 최상위권
치안 우수, K컬쳐로 세계 문화 지형을 바꾸고 있다.
하드웨어로만 보면 선진국 중의 선진국이다.
그런데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33위다.
자살률은 OECD 1위. 성인 3명 중 1명이 사회적 고립 상태다. (통계개발원 「국민 삶의 질 2023」)
학벌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반박할 것이다.
맞다. 주택, 노동시장, 복지, 정치 인센티브도 한국의 불행에 직접 기여한다.
그러나 그 구조를 설계하고 유지하는 집단이 학벌로 선발된다.
부동산 정책을 만드는 관료가 다주택자이고
노동시장 개혁을 설계하는 엘리트가 정규직 기득권자이며
복지 예산을 결정하는 정치인이 고소득 자산가다.
같은 입구를 통과한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문제는 반복되고 수정은 지연된다.
이 역설의 출발점이 학벌인 것이다.
학벌은 어디서 시작됐는가.
산업화 시대에 엘리트를 단기간에 대량 선발해야 했고, 그 도구로 대학 서열이 설계됐다.
가난한 집 아이가 시험 하나로 계층을 지배하는 사례가 나왔다.
그 효용감이 경쟁을 부추겨 사교육을 만들었고, 부모의 경제력이 시험 결과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도 사교육은 있으나 한국은 단일 시험 하나로 평생 지위가 결정되고 재진입 경로가 막혀 있다.
그렇게 좁혀진 입구가 지금도 그대로다.
[학벌 단일 기준 + 재진입 불가] → 엘리트 독점 → 불평등 구조화 → 신뢰 붕괴 → 공동체 해체 → 불행한 한국
1. 엘리트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한국에서 엘리트가 되는 경로는 학벌과 면허 두 가지다.
둘 다 진입 장벽으로 희소성을 만들고 그 안에서 고소득을 지킨다.
한국의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의사 1인당 진료량은 OECD 평균의 3배가 넘는다.
한국 의사 평균 연봉은 약 2억6000만원 OECD 1위다.
아무리 특수한 조건을 감안한다 해도 OECD 회원국 봉직 의사 평균인 약 1억2800만원의 두 배는 과하다.
의사 수가 늘면 공급이 증가하고 수가 협상력이 약해지므로 의사협회는 의대 증원을 필사적으로 막는다.
게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압박 수단으로 삼는 진료 거부는 비윤리적이다.
다른 선진국도 의사협회 로비로 공급을 제한하지만 한국처럼 극단적 집단행동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학벌도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
인서울 명문대로 압축되는 서열 상단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인데
이 경로는 20세 전후 단 한 번의 입시로 결정된다.
입시가 걸러내는 것은 능력의 일부일 뿐이다.
특정 유형의 문제 풀이와 암기력이 전부다.
창의성, 판단력, 윤리의식, 실행력은 처음부터 측정 대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단 한 번의 시험이 평생의 사회적 지위를 결정한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선별이 사실상 되돌릴 수 없다는 점이다.
재수, 편입, 평생교육이 있긴 하다만 이것들은 예외적 경로일 뿐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재수, 삼수는 같은 입시 체제 안에서의 재도전이다.
연간 수백만에서 수천만 원의 학원비를 버틸 수 있는 집과 없는 집이 갈린다.
재도전 기회 자체가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배분된다.
편입은 정원이 너무 적어서 구조적으로 유명무실하다.
편입 시험이 수준 높은 영어를 요구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학 입장에서 편입생은 최소화할수록 기존 재학생 중심의 네트워크와 브랜드가 유지된다.
이건 뭐 실효성도 별로 없고 자기들 브렌드만 강화하는 꼴이다.
평생교육은 자기계발의 의미는 있어도 노동시장에서 학벌을 대체하지 못한다.
기업 채용 기준은 여전히 출신 대학이다.
20대 초반의 선택이 40대, 50대의 처우를 결정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 경로들은 위안일 뿐이다.
한국에는 실질적인 패자부활전이 없다.
2. 학벌이 노동시장을 장악한다
학벌로 결정된 엘리트 집단이 노동시장의 입구를 통제한다.
대기업, 공기업, 금융권, 전문직 모두 채용 기준에 학벌을 핵심으로 둔다.
그래서 노동시장은 상위와 하위 두 계급으로 갈린다.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과 나머지 사이의 임금, 복지, 고용 안정성 격차는 극단적이다.
같은 일을 해도 어느 조직에 속하느냐에 따라 임금이 두 배, 세 배 차이 난다.
이 격차를 넘는 통로가 학벌 하나뿐이니 모든 사람이 그 좁은 문으로 몰린다.
학벌은 입구를 나누고, 제도가 격차를 고정한다.
좁은 문에 수요가 폭발하면 경쟁이 극단화된다.
명문대 유망학과 정원은 고정되어 있다.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초등학교부터 경쟁이 시작된다.
사교육 시장은 이 불안을 먹고 수조 원 규모로 성장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사교육 투자로 이어지고, 그것이 다시 학벌로 연결되니 학벌은 계층을 세습하는 장치가 된다.
가난한 집 아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강남 학원가에서 훈련받은 아이를 이기기 어렵다.
기회의 평등을 표방하지만 실질은 계급을 만든다.
의대 쏠림이 그 단적인 예다. 이공계, 인문계 최상위 인재가 전부 의대로 몰린다.
사회 전체의 인재 배분이 학벌 구조에 의해 왜곡된다.
3. 엘리트 카르텔이 형성된다
같은 학벌 풀에서 나온 사람들이 사회 각 영역의 권력을 장악한다.
정치, 법조, 언론, 재벌, 관료가 동일한 학벌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이들은 서로를 알고, 서로를 보호하며, 서로에게 유리한 구조를 유지한다.
전관예우가 그 단면이다.
검사, 판사, 고위 관료 출신이 퇴직 후 대형 로펌에 자리를 잡고 전직 동료들과의 인맥으로 사건을 수임한다.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은 말 뿐이다.
재벌 총수가 수천억 원의 횡령과 배임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도 집행유예나 사면으로 풀려나는 일이 반복된다.
경제에 기여한다는 논리가 법의 원칙을 이긴다.
이 구조에서 법은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민은 그것을 수십 년째 목격하고 있다.
4. 언론이 감시 기능을 잃는다
언론이 이 구조를 감시해야 하는데 언론 자체가 그 엘리트 집단의 일부다.
기자, 편집국장, 임원 대부분이 같은 학벌 풀에서 나온다.
주요 언론사 상당수가 재벌 소유이면서 동시에 재벌 광고에 종속된 자본 구조를 갖는다.
그야말로 그들만의 리그다. 재벌이 언론을 소유하고, 그 언론이 재벌을 보도한다. 지가 북치고 장구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이 아니라 권력과 공생하는 기관이 된다.
재벌의 불법을 묻어두고, 정치 엘리트의 비리를 진영 논리로 희석하며, 독자를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진영 지지자로 만든다.
비판적 저널리즘이 설 자리가 없다.
언론이 감시 기능을 잃으면 엘리트의 부패는 교정되지 않는다. 부패는 구조화되고 다음 세대 엘리트에게 학습된다.
5. 사회적 신뢰가 붕괴된다
법이 평등하지 않고, 언론이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엘리트가 자기들끼리 보호한다는 것을
국민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신뢰가 무너진다.
제도 신뢰, 타인 신뢰 모두 OECD 최하위권이다.
정부 신뢰도 31.8%다. 사람들은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라는 인식이 퍼진다.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바보 취급받는 사회가 된다.
신뢰가 없으면 협력이 없다. 협력이 없으면 공동체가 없다. 공동체가 없으면 개인은 고립된다.
한국에서 3명 중 1명이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다는 통계는 이 연쇄의 결과다.
게다가 극단적 경쟁 구조에서 타인은 협력 대상이 아니라 경쟁자다.
내가 올라가려면 남이 내려가야 한다. 이 구조에서 신뢰는 사치가 된다.
경쟁 구조 자체가 대인 불신을 만드는 메커니즘이다.
6. 청년이 미래를 포기한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극단적 경쟁이 결합하면 청년의 미래 설계가 불가능해진다.
좋은 일자리는 학벌로 막혀 있고, 주거비는 폭등하며, 결혼과 출산은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이 된다.
학벌 구조는 청년을 두개의 신분으로 나눈다.
문제는 탈락이 아니라 낙인이다. 하위 집단은 스스로를 능력 떨어지는 사람으로 규정하게 된다.
구조가 만든 실패가 개인의 결함으로 내면화된다.
재진입 경로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포기는 합리적 선택이 된다.
청년들은 합리적으로 계산한다.
결혼이 경제적으로 감당이 안 된다. 아이를 낳으면 더 안 된다. 포기가 합리적 선택이 된다.
저출생은 청년의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구조적 합리성의 결과다.
저출생은 다시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생산인구가 줄고, 노인 부양 부담이 늘고, 복지 재정이 악화된다.
학벌 구조가 만든 경쟁과 불평등이 인구 소멸로 이어지는 경로다.
7. 노인이 빈곤으로 내몰린다
학벌 경쟁에서 탈락한 세대가 노년에 진입하면 어떻게 되는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30% 수준으로 OECD 최하위권이다.
노후 안전망이 없으니 65세 이후에도 일을 놓지 못한다.
한국 노인 고용률은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는다. 복지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동이다.
노인 빈곤은 고립으로 이어진다. 독거노인 비율 22%다.
가족 해체와 공동체 붕괴가 결합하면 노인은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이 된다.
노인 자살률이 높은 것은 이 구조의 필연적 결과다.
8. 자살률이 OECD 1위가 된다
경쟁에 지친 청소년, 취업에 실패한 청년, 고립된 중장년, 빈곤한 노인.
각 세대가 각자의 이유로 한계에 몰린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체면 때문에 고통을 드러내지 못하는 억압, 재기할 수 없다는 절망이 더해진다.
자살률 인구 10만명당 27.3명으로 OECD 1위다.
이것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다. 구조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9. 인프라는 최상위인데 행복은 최하위인 역설
의료는 세계 최상위, 교통은 세계 최상위, 통신은 세계 1위, 치안은 우수, 문화 소프트파워는 세계 5위권.
그런데 삶의 만족도는 OECD 33위다.
이 역설의 답이 여기 있다. 하드웨어는 국가가 투자해서 만들 수 있다만 소프트웨어는 사회 구조가 만든다.
한국은 하드웨어에 투자하고 소프트웨어를 망가뜨렸다.
그것을 학벌로 선발된 엘리트가 설계하고 유지하는 구조다.
여기 우리가 잘 놓치는 문제가 있는데
이 구조에서는 기득권 자신들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쟁에서 이겨도 다음 경쟁이 이어지고, 권력을 얻어도 그것을 잃을 것이라는 불안이 남는다.
행복 전문가 연세대 서은국 교수도 말했듯이 인간의 행복은 관계에서 나온다.
불신과 위계로 유지되는 구조에서는 제대로된 관계가 형성될 리가 없다.
돈과 지위로 맺어진 관계는 그 조건이 사라지는 순간 함께 사라진다.
기득권자가 미묘한 거리감을 감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벌 카르텔은 기득권에게도 행복을 주지 않는다.
10. 해결: 구조를 바꾸는 방법
해결은 단일 정책으로 안 된다. 채용, 보상, 이동, 제도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학력란 삭제와 인사 감사 의무화
공공부문 채용과 대학원 입시에서 학력란을 없애고, 기존 직업훈련 이수 실적을 채용 자격으로 연계한다.
추가 예산 없이 연결 고리만 만들면 된다.
공공기관 임원 임명 기준에 출신 대학 다양성을 요건으로 넣고
학벌 편중 인사를 감사 대상으로 만들면 카르텔 내부자도 우회하기 어렵다.
직무시험과 실무 평가 비중을 높이고, 동일 직무 내 임금 범위를 공개해 학벌 프리미엄을 약화시킨다.
재교육 바우처와 인턴 매칭으로 전환 경로를 만들고, 경력 인정 기준을 직무 단위로 표준화해 이직 비용을 낮춘다.
민간 재벌은 두 가지로 강제한다.
정부 조달과 인허가를 채용 다양성 지표와 연동하면 재벌도 따를 수밖에 없다.
기업 ESG 공시에 학벌 편중 인사를 사회적 리스크 항목으로 넣으면 투자자 압력이 생긴다.
공공이 먼저 바뀌고 민간을 끌어당기는 구조다.
공영방송 학벌 편중 인사 철폐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초중고 진로 교육을 역량과 적성 중심으로 바꾸고
공영방송 임원과 앵커 선발 기준에서 학벌 편중을 끊고 다양한 배경의 인물을 전면에 세워라.
공영방송이 먼저 바뀌면 학벌 중심 성공 서사의 재생산 구조가 흔들린다.
비학벌 엘리트 성공 사례 창출
한 분야에서라도 학벌이 아닌 실력으로 올라선 인물이 성과를 내면 그 자체가 반례가 된다.
카르텔은 독점일 때 강하다. 경쟁자가 생기면 균열이 시작된다.
IT와 스타트업이 그 가능성을 부분적으로 보여줬다.
구조를 바꾸는 주체는 결국 정치다.
기득권 집단은 스스로 입구를 열지 않는다.
조직된 시민과 그것을 등에 업은 정치적 의지가 없으면 제도는 바뀌지 않는다.
지금 이재명 정부가 그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같은 입구를 통과한 또 다른 엘리트로 머물 것인지가 관건이다.
자살률을 낮추고 싶다면 위기상담 전화를 늘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벼랑으로 미는 구조에 메스를 대야 한다.
그 메스의 이름은 학벌 카르텔 해체다. 선발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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