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한다.
누가 권력을 쥐고 어떻게 그것을 숨기는가.
《눈뜨고 지배당하는 12가지 패턴》은 그 현재형을 해부했다.
일제 36년은 그 원형이다. 가장 드럽게 걸렸고, 가장 드럽게 당했다.
왜 당했나
조선은 안에서 먼저 무너졌다.
붕당정치 500년이 남긴 건 소모적 분열이었다.
왕의 처가가 나라를 먹었고 지배층은 권력 유지에만 집중했다.
흥선대원군의 쇄국은 외압을 막는 대신 발전의 시간을 날렸다.
1876년 강화도조약으로 문이 열렸을 때 조선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읽을 준비가 없었다.
지배층은 살아남기 위해 외세를 불러들였다.
명성황후는 러시아를 끌어들였고, 친일파는 일본과 손을 잡았다.
전봉준과 동학농민군이 저항했지만 이에 겁먹은 조선 조정이 청나라에 군대를 요청했고 일본군은 톈진조약을 빌미로 따라 들어왔다.
나라를 판 건 외부가 아니라 내부였다.
어떻게 당했나
1. 수탈
토지조사사업(1910~1918)으로 농민의 토지가 증거 서류 미비를 이유로 박탈됐다.
동양척식주식회사가 그 땅을 교묘히 약탈해 일본인 이민자에게 싸게 팔아넘겼다.
소작농으로 전락한 조선인이 소작료 50~70%를 바쳤다.
2. 강제동원
1905년 을사늑약. 고종의 서명이 없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대신들을 협박해 날인을 받았다. 외교권이 박탈됐다.
1907년 헤이그 밀사 파견이 실패하자 고종은 강제 퇴위당했다.
1910년 한일병합. 조약 원본에 순종의 어새가 찍혔는지조차 논란이다.
강제징용은 1939년부터 본격화됐다.
국민징용령으로 70만~100만 명이 탄광, 군수공장, 토목현장으로 끌려갔다.
임금은 강제 저축 명목으로 떼였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수만 명이다.
3. 문화말살
창씨개명(1940)은 이름을 지웠다. 조선어 교육은 1938년 폐지됐다. 신사참배가 강제됐다.
언론은 총독부가 장악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1940년 강제 폐간됐다.
4. 여성착취
몽골이 고려를 지배하던 13~14세기, 공녀 제도가 있었다. 조선 여성을 공물로 바쳤다. 치욕이었다.
그러나 그 구조 안에서도 기황후가 나왔다. 공녀로 끌려간 여성이 원나라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다.
착취의 구조였지만 인간으로서의 유동성은 있었다.
일본 위안부는 어떤가.
오로지 씹구멍이었다. 하루 수십 명의 남성을 상대하는 것이 전부다.
취업 사기, 인신매매, 강제 연행으로 끌려갔다.
피해 여성 추산 5만~20만 명. 전쟁터를 따라 이동했다.
올라갈 곳도, 살아남을 이유도 주어지지 않았다. 종전 후엔 상당수가 현지에 버려졌다.
살아 돌아온 여성들은 수십 년을 침묵 속에 살았다.
증언을 시작했을 때 일본 정부가 한 첫 번째 반응은 부인이었다.
그 DNA는 여전하다.
일본 포르노 산업은 세계 최대 규모다.
AV 산업의 구조적 착취, 여성을 소비재로 규격화하는 방식
그 안에서 반복되는 강압과 기만의 패턴은 위안부 동원의 논리와 구조가 같다.
여성은 쓰는 것이라는 철학 부재가 산업으로 온존한 것이다.
실용은 있고 철학이 없는 나라. 부끄러움을 모르는 나라.
우리 욕에 개가 들어가는 이유가 있다.
개는 자기 혈육과도 누가 보건 말건 교미한다.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딱 그렇다.
그 나라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나. 철학자들은 어디 있었나.
니시다 키타로는 교토학파를 이끌며 일본 제국주의에 철학적 외피를 입혔다.
반성은 없었다. 부끄러움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에서 철학은 권력의 장식이 됐다.
거짓말을 교묘하게 가르치는 교육.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으로, 강제징용을 노무 동원으로 기술하는 교과서.
이건 역사 해석의 차이가 아니다.
금세 들통날 거짓말을 국가가 조직적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부끄럽고 더러운 짓이다.
독일을 보자
1970년 12월 7일,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무릎을 꿇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봉기 희생자 추모비 앞이었다.
아무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나치 피해자가 아니라 저항 운동가였다.
직접 가해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꿇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했다." ㅡ 빌리 브란트
독일은 전범을 끝까지 추적했다.
교과서에 나치 범죄를 명시했다.
홀로코스트 부정은 형사처벌 대상이다.
피해국에 배상했다. 부끄러움을 국가 교육의 중심에 놓았다.
일본은 완전히 다르다.
사과도 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한다. 놀리는 것 같다.
교과서는 가해를 지운다. 위안부 합의는 10억 엔으로 봉인하려 했다.
부끄러움이 없는 자리에 반성은 없다.
같은 전범국인데 차이가 극명하지 않은가.
그 구조는 청산됐는가
아니다.
1945년 해방 후 반민족행위처벌법(1948)이 제정됐지만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해체했다.
친일 경력자들이 군, 경찰, 사법부, 언론에 그대로 남았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문구 하나로 개인 피해를 봉인했다.
강제징용 판결은 지금도 외교 분쟁 중이다.
독도는 1946년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SCAPIN 677)로 일본 행정권에서 분리됐다. 한국이 실효 지배 중이다.
그러나 일본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철회한 적이 없다.
교과서에 명기하고 외교 채널로 반복 제기한다.
뻑하면 대지진에 쓰나미에 공포를 기본값으로 달고 사는 섬나라이니
땅 한 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딱한 사정은 이해한다만 애초에 틀린 접근이고 방법도 드럽다는 것이다.
사과와 야스쿠니 참배를 동시에 하는 나라의 일관된 태도다.
지배는 끝났다. 패턴은 남았다.
권력이 역사를 어떻게 봉인하는지, 피해를 어떻게 구조 안으로 흡수하는지.
그 방식이 지금 이 블로그가 추적하는 것과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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