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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강연들, 왜 이리 공허한가

공허한 강연을 구글 제미니가 그린 이미지.

 

 

AI 강연이 넘쳐난다. 전부 아는 얘기다.
유니크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꾸준함이 중요하다, 발산하라.
한 마디 던지고 끝낸다.
줄줄이 꼬리를 물고 솟구치는 의문은 그냥 방치된다.
당위만 있고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다.

 

 

공허한 AI 콘텐츠의 유형은 다양하다.

당위만 반복하는 동기부여 강연 / AI가 모든 걸 대체한다는 과장 / AI 위협을 과장해 조회수를 낚는 공포 마케팅 / AI 툴 몇 개 소개하고 끝나는 실용 콘텐츠 / 제목만 자극적이고 내용은 검색 결과 복붙 / ChatGPT로 돈 버는 법 류의 낚시성 콘텐츠.

 

형태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알맹이가 없다.

이 중에서 당위형 강연을 집중 해부한다. 나머지는 제목만 봐도 안다.

당위형이 가장 교묘하게 공허하기 때문이다.

 

유니크하면 살아남는다 — 그래서?

유니크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는 틀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완전하다. 유니크함이 어떻게 발견되고 어떻게 유통되느냐는 핵심 질문이 빠져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유니크하면 그냥 혼자 유니크한 거다. 발견과 유통의 경로가 없으면 공염불이다.

 

발산하라 — 어디에?

뭔가를 만든 사람 중에 발산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문제는 어디서 누구에게 어떻게 발산하느냐다.

다양한 곳에 전시한 화가가 성공했다는 연구를 인용하며 발산하라고 한다.

다들 다양한 곳에 알리고 싶다.

그게 어렵기 때문에 못 하는 거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푸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공돌이가 인문사회를 건드릴 때

어느 강연에 카이스트 뇌과학 교수가 나왔다.

영어를 섞어가며 막연한 소리를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공학자가 인문사회 영역을 건드리면 한계가 빨리 온다.

유니크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명제 하나를 던지고 방법론 없이 끝낸다.

인문사회 영역은 그 명제 하나로 논문 한 편을 써야 하는데...

공학자가 인문사회를 건드릴 때 이런 문제가 자주 생긴다. 카이스트 교수만의 문제가 아니다.

 

꾸준함이 중요하다 — 999999년 전부터 아는 얘기다

AI 시대에 역설적으로 꾸준함이 중요해졌다는 말도 포장지만 새롭다.

열심히 꾸준히 하면 된다는 건 인류가 수만 년 전부터 알고 있던 얘기다.

효율이 좋아졌을 뿐 근본은 AI 시대라고 다르지 않다.

 

공허한 이유

이런 콘텐츠가 공허한 이유는 AI를 모르거나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층에게는 유효할 수 있다.

그러나 착각을 교정하는 수준에서 끝난다.

AI를 이미 쓰고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정보가 없다.

역설적으로 AI 요약 서비스가 이런 콘텐츠부터 걸러낸다.

알맹이 없는 영상은 요약하면 한 줄이다.

그 한 줄을 보고 굳이 영상을 볼 이유가 없어진다.

AI 시대를 말하면서 AI 시대에 가장 먼저 도태될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꼴이다.

 

결론: AI는 도구다, 진리는 바뀌지 않는다

알맹이 있는 콘텐츠는 구체적이어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발산할지, 어떻게 유통할지는 AI가 해결해주지 못한다.

사회 구조의 문제이고 네트워크의 문제이고 마케팅의 문제이고 운의 문제다.

 

AI는 도구다. 도구가 좋아졌을 뿐 그 외에는 전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알맹이 있는 콘텐츠란 무엇인가. AI를 포장으로 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직접 부딪힌 문제를 구체적으로 쓰고, 내가 찾은 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독자가 읽고 나서 뭔가 달라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