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사랑이 무엇인지 확고한 정의 없이 살아가는 것은 답답한 노릇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은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만
"사랑이 뭘까?" 각 잡고 물어보면 정작 답변이 감상이나 통념에서 헤매기 십상이다.
선진 시민으로서, 사랑에 관한 나만의 견해 한마디 정도는 가지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분석한 끝에 '저 인간도 나와 같구나 하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이해와 배려'라는 정의에 도달했다.
내 정의를 널리 알리려는 의도는 없다.
솔직함과 인권을 전제로, 시중의 정의들을 하나하나 저울질하고
중복을 제거하고, 진짜의 뼈대만 남기는 과정을 공개할 뿐이다.
아직 명료하지 않다면 이 과정을 함께 밟아보며 자신의 정의를 내려보길 권한다.
1. 전제
논하기 전에 세 가지 조건을 밝혀 둔다.
첫째, 솔직
가리거나 감추면 안 된다.
성욕이든, 질투든, 이기심이든, 불편한 것도 직시해야만 바르게 분석할 수 있다.
둘째, 인간 사이의 사랑으로 한정
동물이나 식물 등 비인간 생명체 혹은 무생물에 대한 애정과 애착은 소중하지만
애착, 본능, 조건화 등의 문제로 인간의 사랑과는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인권이 전제된 상태
사랑을 논하려면 최소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인정하는 상태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은 사랑의 조건이 아니라 사랑을 논하기 이전의 전제다.
이 전제가 없으면 광기나 폭력, 무아지경 같은 말도 안 되는 예시들이 튀어나올 수 있어서 미리 못박아 둔다.
※ 인권이란 간단히 말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고 명시한다.
생명을 존중받을 권리,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이 그 핵심이다.
2. 여러 정의 검토와 분류 과정
2.1 수집
복수의 LLM AI로써 공신력 있는 사랑의 정의를 모아 보니 약 37개에 이른다.
서양 철학: 플라톤의 에로스(결핍의 욕망), 아리스토텔레스의 필리아(동등한 우정), 스피노자의 능동적 정념, 칸트의 의무로서의 사랑, 헤겔의 인정 투쟁, 프롬의 능동적 실천, 라캉의 결여의 욕망, 바디우의 사건적 진리, 한병철의 타자성 인정 등
종교,동양: (동양은 종교와 철학의 구분이 흐릿하여 하나로 묶었다)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아가페(무조건적 베풂), 예수의 사랑(원수 사랑, 십자가 희생), 유가의 인(仁), 도가의 무위, 힌두교의 박티, 이슬람의 이슈크
심리학: 프로이트의 리비도, 융의 아니마/아니무스, 볼비의 애착, 스턴버그의 친밀, 열정, 헌신, 헬렌 피셔의 욕망, 끌림, 애착
진화생물학: 유전자 보존, 상호 이타성
문학,일상: 낭만적 사랑의 신화, 한국의 정(情), 소울메이트, 첫사랑 절대화
비판 이론: 마르크스주의의 상품화 비판, 페미니즘의 가부장제 비판, 푸코의 권력 분석
일상 통념: 소유욕, 의존, 자기 확장, 거래
이 37개를 묶고 판별하고 추려낸다.
2.2 여섯 개 그룹으로 — 통합
그룹— 핵심 : 주요 출처
A — 결핍, 욕망으로서의 사랑 : 에로스, 라캉, 리비도, 낭만적 열정
B — 무조건적 베풂 : 아가페, 자비, 박티
C — 동등한 우정, 인정 : 필리아, 헤겔, 한병철
D — 결단, 실천 : 칸트, 프롬, 바디우
E — 자기 변형, 발견 : 스피노자, 사르트르, 융
F — 시간 속 결속 : 인, 정, 애착
2.3 사랑이 아닌 것 — 6종 배제
사랑이라 불리지만 사랑이 아닌 것을 솎아내어 윤곽을 잡는다.
소유, 의존, 거래
사랑의 외피를 두른 다른 것들.
소유욕은 통제욕의 변형, 의존은 자기 부재를 타자로 메우는 미성숙, 거래는 시장 논리의 관계화.
사랑의 외피를 두른 다른 것들.
소유욕은 통제욕의 변형, 의존은 자기 부재를 타자로 메우는 미성숙, 거래는 시장 논리의 관계화.
의무로서의 사랑
강제되거나 당위로 수행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강제되거나 당위로 수행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자기를 위한 사랑
사랑을 수단으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단, 타자와 만나며 자기가 개선되는 것은 사랑의 결과로 보존한다. 자기 이익만.
사랑을 수단으로 자기 이익을 도모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단, 타자와 만나며 자기가 개선되는 것은 사랑의 결과로 보존한다. 자기 이익만.
진화, 생존 기능
유전자 보존이나 상호 이타성은 사랑의 기원을 설명할 뿐 사랑 자체는 아니다.
유전자 보존이나 상호 이타성은 사랑의 기원을 설명할 뿐 사랑 자체는 아니다.
이데올로기 비판
권력 분석은 사랑의 정의가 아니다.
권력 분석은 사랑의 정의가 아니다.
신화, 통념
아가페, 소울메이트, 첫사랑 절대화는 현실에 없다.
아가페, 소울메이트, 첫사랑 절대화는 현실에 없다.
2.4 세 개 핵심으로 압축
배제 후 남은 그룹을 압축하면 셋이 된다.
타자를 향한 사랑 — B + C + E
결단, 실천 — D
시간 속 결속 — F
이 셋이면 거의 모든 사랑 현상을 좌표 위에 놓을 수 있다.
2.5 세 핵심은 모두 동질감을 전제로 작동한다
연민은 상대의 고통에 반응하는 것이고, 의무는 규범에 반응하는 것이고, 습관은 관성에 반응하는 것이다.
셋 다 '왜 이 사람인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반면 동질감은 그 물음에 답한다.
"저 사람도 나처럼 두렵고, 나처럼 외롭고, 나처럼 죽는다"는 인식이 특정 타자를 향한 이해와 배려의 동기가 된다.
앞서 정리한 세 핵심—타자를 향한 사랑, 결단, 시간—은 모두 이 동질감을 전제로 작동한다.
동질감 없는 타자를 향한 태도는 연민이나 의무에 머물고, 결단과 시간은 공허한 습관이 된다.
동병상련은 인간 본성이다.
나는 이 동질감을 사랑의 근원으로 삼으며, 그것이 구체적으로 발현된 형태를 이해와 배려라 부른다.
3. 나의 정의
내가 도달한 정의는 이것이다.
사랑은, '저 인간도 나와 같구나' 하는 동질감에서 비롯된 이해와 배려다.
사랑은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근원적 공감에서 비롯된다.
(우정도 별도의 개념이 아니라 그 대상이 친구일 때 붙이는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이다.)
이해는 상대의 처지를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고, 배려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태도다.
배려의 의지는 있으나 능력이 없을 때에도 사랑은 존재한다. 의지 자체가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레비나스는 절대적 타자성의 인식을 사랑의 출발점으로 강조하는데
나는 정반대로, '저 인간도 나와 같구나'라는 동질감을 사랑의 출발점으로 둔다.
그러나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같은 것의 다른 면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철저하게 다른 타인이기에 존중(인권)해야 하고
동시에 죽음의 운명 앞의 동료이기에 사랑(동질감)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사랑을 두고 오해가 팽배해 있어서 꼭 짚고 넘어가야겠는 것이 있는데
이성에게 끌려 설레고, 자기 취향에 맞아서 기쁜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이는 자기 욕망의 투사일 뿐이다.
상대 성향과 자신의 욕망이 일치할 때만 피는, 조건에 의존한 일방적 감정이다.
게다가 누구도 다른 이의 취향에 완전히 들어맞을 수 없으니 그 감정은 섣부르다 할 것이야.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사랑의 가능성일 뿐, 씨앗을 꽃이라 부를 수 없다.
하물며 섹스는 더더욱 사랑이 아니다.
3.1 이성 간의 사랑과 성욕 문제
성욕은 자기 내부에서 일어나고, 특정 대상에 쏠리며, 작용력이 때론 미친듯이 강하다.
여기서는 '성욕 자체'의 분석이 아닌, 사랑과 성욕을 구분하는 것에 집중한다.
남녀 간의 사랑은 예술과 문학의 가장 빈번한 소재 중 하나다.
이성 간의 사랑도 당연히 사랑이다. 다만 많은 사람이 성욕을 사랑으로 오해한다.
성욕이 있건 없건 동질감, 이해, 배려가 함께 작동한다면 사랑의 범주에 들어간다.
섹스만 있고 동질감, 이해, 배려가 없으면, 그것은 그냥 떡치는 관계다.
떡치다가 동질감, 이해, 배려로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고, 기대할 근거도 없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입장을 받아들여
대중문화나 문학 예술이 '사랑'으로 포장하는 첫눈에 반함, 열정, 운명 등 대다수의 경우를 성욕으로 본다.
이는 욕망, 집착, 환상이고 길어야 3년짜리 호르몬의 기계적 반응이다.
나도 경험한 터라 그 입장이 되면 이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걸 안다.
머리만이라도 이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과 머리 속에 이런 인식이 아예 없는 것은 천지차이일 것이다.
섹스는
모든 인간 행동의 주요 동기이고, 번식 수단이고, 기본권이고, 건강에 이로운 행위이고, 문화 예술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하며
큰 행복이고, 대체 불가한 독특하고 강렬한 쾌락이다.
동시에 은폐, 억압, 수치, 죄악시 되어 억울한 오명을 쓰고 있기도 하며
온갖 범죄와 사회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점, 사랑으로 오인되는 경향에서 사랑 만큼이나 의미 깊은 주제다.
앞으로 별도의 지면을 할애하여 치밀하게 논해 볼 요량이다.
4. 남은 질문들
아래 네 질문은 특정 이론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앞서 37개 정의를 묶고, 6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6종을 배제하고
3개 핵심으로 압축하여 공통분모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은 물음들이다.
앞서 37개 정의를 묶고, 6개 그룹으로 분류하고 6종을 배제하고
3개 핵심으로 압축하여 공통분모를 도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남은 물음들이다.
다시 말해, '사랑이 아닌 것'을 모두 치우고 나니
그럼에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네 가지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중 첫 번째 질문은 타자를 위한 사랑의 가능성에 관한 철학적 논쟁
두 번째는 프롬과 스턴버그의 관점
세 번째는 스턴버그와 볼비의 애착 이론
네 번째는 배제 과정에서 남은 자기 개선의 문제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결국 이 글의 분류 작업을 통해 내가 독자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두 번째는 프롬과 스턴버그의 관점
세 번째는 스턴버그와 볼비의 애착 이론
네 번째는 배제 과정에서 남은 자기 개선의 문제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결국 이 글의 분류 작업을 통해 내가 독자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1. 타자를 위한 사랑은 인간에게 가능한가
인간은 이타적 선택을 할 수 있다.
사랑의 최소 조건은 희생의 크기가 아니다. 이해와 배려의 의지가 있다면, 작은 희생도 사랑이다.
2. 사랑은 감정인가 행위인가
사랑에는 감정과 행위 모두 필요하다.
감정은 가장 쉽고 빠르게 작동한다. 자동차의 시동처럼 필요조건이다.
사랑의 실효성은 행위로 만들어진다.
감정이 있고 행위가 없는 사랑은 시동은 걸려있으나 서있는 차와 같다.
3. 사랑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가
그렇다.
허나 짧은 기간의 사랑이라고 해서 사랑이 아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오래 지속된 사랑일수록 단련되고 견고해질 가능성이 더 높다.
시간의 길이는 그 견고함을 추론하는 주요 근거가 될 수 있다.
4. 자기를 위한 사랑은 정말 사랑이 아닌가
자기만을 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 안에 동질감, 이해, 배려가 작동하는 가운데
내가 더 나은 존재로 확장되는 경우만이 사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타자를 도구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인권 존중의 전제에 맞지 않는 비윤리다.
마치며
이 글의 핵심은 결론 자체보다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 있다.
37개 정의를 모으고, 묶고, 배제하고, 환원하는 작업은 사랑의 액기스를 찾기 위한 나의 사유 기록이다.
37개 정의를 모으고, 묶고, 배제하고, 환원하는 작업은 사랑의 액기스를 찾기 위한 나의 사유 기록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아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은 사랑할 줄 알게 되는 첫걸음이다.
그러나 무엇이 사랑이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은 사랑할 줄 알게 되는 첫걸음이다.
타인에게서 동질성을 발견할 때, 거기서 나온 이해와 배려가 사랑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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